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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1. 동사<Verb>로서의 나La ; Life/생각들 2020. 8. 10. 19:08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프랑수아, 또 한 친구는 크리스티나였어요. 프랑수아는 책을 읽고 사진역사를 공부하고 기술도 연마하고 갤러리를 다녔어요. 1년 뒤에 그의 사진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한편 크리스티나는 손으로 각도만 잡고 6개월을 보냈어요. 답답했죠. 크리스티나는 자기가 왜 사진을 찍고 싶은지 무엇을 찍고 싶은지 그것에 대한 해답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진기를 사지 않겠다고 했어요. 1년 뒤에 그녀의 사진을 봤어요. 제가 봐도 정말 못 찍었어요. 2년이 지났어요. 굉장히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프랑수아는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았어요. 이상하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빠르게 이루기 위해서 남이 주는 정보를 습득하고 빠르게 기술을 습득했었던 프랑수아는 자신이 왜 사진을 찍고 싶어 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크리스티나는 이제야 사진역사를 공부하고, 갤러리에 가서 예술가들하고 대화하기 시작하고 여러 가지 기술들을 습득하고 했어요. 크리스티나는 왜 사진을 찍고 싶은지 그것을 먼저 쌓아 올렸어요. 그러고 나서 여러 가지 기술들을 익혔어요. 지금 크리스티나는 사진작가가 되었어요."
-건축가 백희성백희성 건축가의 <직업을 버리고 꿈을 찾다>라는 세바시 영상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직업은 대부분 명사화되어 있는데 꿈은 동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명사로서의 직업을 쫓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명사화된 직업을 쫓다 보면 내가 왜 그 직업을 선택했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다. 나는 정말로 잊어버렸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써보기로 했다.
<나에게 스스로 하는 인터뷰>
˚나는 동사로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만들고 싶다.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여유를 만들고 싶다. 물리적으로는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지금은 일단 조경으로 정하고 준비 중에 있다.
˚꼭 조경이어야 하는가?
아니다
˚그럼 왜 조경을 하려고 하는가?
어렸을 때부터 나무를 좋아했다. 식목일이 괜시리 설레었다. 아마 모든 쉬는 날 중 식목일이 가장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낭만이라는 단어를 모를 때에도 그 단어와 가장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릴 때에도 다른 부분보다 나무의 색을 이렇게 저렇게 묘사하는 것에 한참 빠져있었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색들이 좋았다. 녹색에 노란빛 연둣빛을 이리저리 섞는 게 정말 흥미로왔다. 여전히 나무는 나에게 영감을 준다. 그래서 조경 디자인을 하고 싶은 것이다. 조경을 전공하고 나서는 다양한 녹색을 그려내는 데 사용하고 싶다. 공원 설계뿐만 아니라 공원에 직접 나무를 심는 일도 해볼 수 있고, 설치미술도 해보고 싶다. 가드닝이 잘 되어 있는 카페를 운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카페에 사진, 그림, 시, 잘 편집된 잡지 등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의 작품이 스며드는 공간을 만들고 싶기도 하다. 어쩌면 무엇이든 상관없을 수도 있다. 나의 동사 "나무와 녹색을 묘사하는 것이 좋았다"라는 것과 "여유를 주고 싶다"라는 동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학부 전공에서는 무엇을 배웠는가?
나는 신학을 전공했는데, 전공을 마무리하면서 개인적 결론을 내렸었다. 그것은 좀 거창하지만 이렇다. "여유, 사랑 그리고 재산의 순환은 사람의 긍정적인을면을 확대시킨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여유 없음, 이기심, 재산의 비대화는 사람의 부정적인 면을 확대시킨다."라고 귀결 지었었는데, 사람에게 있어서 '여유' , '사랑', '재산의 순환'은 그 결과로 "다양성의 확대", "상상력의 확대", "자연의 돌봄"을 가능하게 해 주며 다양한 생각과 삶의 형태를 허용하게 해주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그 안에서 인간은 획일화된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시대가 선순환된다고 생각했다. 그 연장선에서 지금의 나는 여유를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도시에 삶에 여유를 만들고 싶고 시골의 삶에는 쾌적함을 더해주고 싶다. 신학을 전공했는데, "신"에 대한 부분보다 "인간성"에 대한 부분으로 귀결된 것 같다. 그게 배울수록 신을 설명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고 결국 신에 이르는 길은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길로 진입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사로서의 꿈을 써보니까 어떤가?
나를 다시 찾은 느낌이 난다. 정말로 1년은 넘게 방황한 것 같다.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고 싶다라는 꿈을 찾은 이후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을 했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공간이나 디자인 관련 일이 비슷한 맥락과 기술을 가지고 진행한다는 생각을 했다. 일을 익힌 나로서는 꿈이 아닌 조금 더 현실적인 결정들을 내리고자 했다. 그 '현실적인 결정'이란 공간 분야에서 조경보다 조금 더 파이가 크고, 사회적으로 매력적인 직업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린 "건축가"라는 그림. 그 명사는 사회적 기대가 포함된 꿈이었다. 이제 그런 꿈 꾸고 싶지 않다. 그런 꿈에는 동기부여가 나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동기부여가 떨어질 때마다 괜찮은 건축가를 찾아서 모델링을 해야만 하고, 누가 나하고 철학이 비슷한가 찾아내야만 한다. 나는 그걸 보면서 뭔가 억지 텐션의 감탄을 한다. 왜냐하면 한 분야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탄할 면모가 없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나는 건축가가 가지는 사회적 함의를 찾아야 했다. 그 사회적 함의를 가지고 내가 원래 꾸었던 꿈이 꼭 조경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렇게 여러 정보를 찾아서 나에게 가져다 붙여야만 했다. 나에게서 저절로 나오는 무언가가 없었다. 그런데 나의 무의식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유학을 위해 베를린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어본 분에게 술이 취한 나는 말했었다. "여유를 생산하고 싶어요.". 술에 취해 저 말을 했다는 게 오그라들지만 그게 나인걸 어떡하겠나- 낭만 투성이인 나를 미워하지 말자. 사회는 나를 미워하게끔 만드는 현실들을 계속 주입하지만 나는 식목일에 설레었던 그런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제부터라도 낭만의 파이를 더 키워 나갈 것이다.
나다운 나에게 약점은 없다." - Morra Aar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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